도가니

일상/독서 2010. 1. 20. 17:25



도가니
공지영
창비, 2009



쎅스의 양과 질조차도 소유에 비례하니까 말이다
p71

그게 말이야, 우는 일이라는 게, 그게 장엄하게 시작해도 꼭 코푸는 일로 끝나더라고
p135

그러나 역시 오래된 권력은 나태해 진다. 그건 어쩔 수가 없는지 그들은 그저 어제처럼 오늘도 아무 일 없을 거라는 생각에 아무 대비도 하지 않은 듯 했다. 그토록 힌트를 주었건만 이제 그로서도 더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오랜 경험을 가진 그로서는 늘 하는 생각이었지만 나쁜 놈들이 아니라 어리석은 놈들이 수갑을 찬다. 맹수는 다리를 다친 사슴 한마리를 잡을 때도 결코 방심하지 않는 법이다.
p149

진실이 가지는 유일한 단점은 그것이 몹시 게으르다는 것이다. 진실은 언제나 자신만이 진실이라는 교만 때문에 날 것 그대로의 몸뚱이를 내놓고 어떤 치장도 설득도 하려 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진실은 가끔 생뚱맞고 대개 비논리적이며 자주 불편하다. 진실 아닌 것들이 부단히 노력하며 모순된 점을 가리고 분을 바르며 부지런을 떠는 동안 진실은 그저 누워서 감이 입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이 세상 도처에서 진실이라는 것이 외면당하는 데도 실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면 있는 것이다.
p165

제 말을 좀 들어봐요. 서간사는 법정에서 정의 같은 게 건져질 거라고 생각해요? 전관예우가 뭔지 알아요? 황변호사, 서울 강남에 사무실 한 채와 집기 일체를 약속받고 왔어요. 그거 얼마나 거금인 줄 아시잖아요. 그사람 무진의 수재였고 바보가 아닌 담에야 저 인간들 이 성폭행한거, 농아들 유린한 거 모를 것같아요? 천만에! 황변호사도 고민했을 거고, 그 나름의 사회정의를 위해 농아들 몇을 희생시키는 게 이고장의 발전을 위해, 말하자면 대의를 위해 옳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판사? 그 사람들 서로서로 대학동기, 선후배, 고시동기, 처삼촌, 고등학교 동창의 사돈, 사위의 은사예요. 이번 사건 맡은 검사? 무진에서 임기 육개월 남았어요. 이번 사건 물고늘어지다가 행여 누군가의 심기라도 건드리면 이번에는 서울로 가서 부인과 아이들과 합칠 계획을 망치겠죠. 그 사람들 세상에 태어나 지금까지 점수, 점수, 점수, 경쟁, 경쟁, 경쟁 속에서 남을 떨어뜨리고 여기까지 왔어요. 일점 때문에 친구는 낭인이 되고 자신은 판검사가 되었단 말이죠. 그런데 그들이 정신능력이 떨어지는 장애아들 몇명 때문에 처삼촌과 대학동창 사돈과 사위의 은사와 장인의 후배와 얼굴을 붉혀가며 그 정의라는 거, 진실이라는 거 되찾아 줄 것 같아요? 그 사람들에게 진정 학원 이사장과 장애아의 인권이 같을 줄 알아요?
p255



왠지 오늘은 안개가 정말 심한 날이었다. 그래서 나는 마치 소설속의 강인호가 된 듯한 기분으로 스물스물 하지만 분명해져오는 헤드라이트를 응시하고 있었다. 듣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괜한 상상은 그 상상이 잘 안될정도로 무섭다. 뭐 내 수준에서 딱 맞는 상상이랄까.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위치와 역할이라는 것과 양심, 도덕 뭐 이런 이상적인 논리가 공존할 수 없다, 든가 전혀 별개의 것이다 라고 이해될 수 있다. 처음부터 별볼일 없는 주인공은 자신의 안에서 끓어오르는 정의감 같은 공감받을 법한 개념들로 여기저기 튕기다가 결국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는 그런  "영영 불행한" 길로 가는 것이다. 그 길로 안갔다면 시시한 소설이 되었겠지만. 어쨋든 너무 솔직해서 긍정적인 자극이 되지는 않았다. 나는 그런 불순한 구조들에 대해 어느정도 인정하고 있고, 또 그렇게 살아가고 있고,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다고 변명하고 싶은 시시한 인간..이구나.


이상한 일은 삶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면 될수록 사람에 대해 정나미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이상한 일은 정나미가 떨어지는 그만큼 인간에 대한 경외같은 것이 내 안에서 함께 자란다는 것이다.
작가의 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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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aul Ju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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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20 15: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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