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설탕이 녹는 동안
전경린
2002, 문학동네


얼굴이란 어떤 경우든 은폐와 신비화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
야 상징과 표현이라는 두개의 요소로 환원된다. 스무 살인
나의 얼굴은 날마다 껍질이 벗겨지는, 아직 역할을 얻지 못한
쓸쓸하고 적막한 탈이었다.  p11
어둠속에서도 요 위에 새겨진 단풍잎 모양의 얌전한 얼룩이
보였다. 첫경험은 형편없었어. 하긴, 남자에게 첫경험이 무의
미한 것처럼 실제로 여자에게도 첫경험이라고 굳이 간직할 만
한건 없어. 그건 첫경험이 여자의 생을 지배하는 운명이 되어
버렸던 지나간 시대의 말이라구. 짜증을 담은 영신의 말이 떠
올랐다. '그건 소통이었어. 이 단절된 세계의 틈에 머리를 들
이민 소통이었다구' 다음에 누군가가 나에게 첫경험을 묻는다
면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우리는 다시 잠들었다. 아침이 되
어 누군가 문을 마구 두드릴때 까지. 여덟시였다. 비가 내려
도로 저녁인 것 같은 어둑한 아침이었다. "스무 살이 인생이
되게 하지는 말아라. 스무 살은 스무 살일 뿐이야. 삶으로 끌
고 가지는 마."  p168
아버지는 내가 어린아이인 것처럼, 내일부턴 일찍 일어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이미 알려진 관용구로 응수했다.
나의 관용구란 침묵이었다. "이해가 안된다. 도저히 이해가 안
돼" 아버지가 말했다. 이해란 무엇일까. 소통이 불가능한 채
로 한 존재를 이해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그러니 이해한
다는건 곧 억압하는 데 성공한다는 뜻이 아닐까.  p36


고리타분한 해설이 달려 있긴 한데 매개체니 상징이니 하는
동아전과에나 나올법한 용어들이 처음부터 맘에 들지 않는다.
주인공은 다분히 개인중심적이고 스무살이라는 핑계로 무력
하고 의미없는 시간을 보낸다. 사실 이 역시 스무살을 보낸
나의 경험이라기 보다는 지극히 주관적
인 판단이지만. 스무살이라서 이해할 수 있고 용납되어 지는
많은 사실들이 있는건 당연하지만 나는 삼년전에 스물이었
는데. 지금은 누구에게 이해를 받아야 하나 그게 지금에서야
깨닫게된 지금까지의 화두다.
경험해 보지 못한 사실들에 대한 확신은 자만과 아집이다.
자신이 변하지 않는다고 그렇게 노력할꺼라고 말하지만
내가 변하지 않아도 이미 내 주변은 변하고 있고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변하지 않치만 자신을
깨닫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나에게 바보같은 놈이라고 말해줄 사람은
없을까.









Posted by Paul Ju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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