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일상/메모 2009. 4. 13. 21:55






여자                 



송수권




이런 여자라면 딱 한 번 살았으면 좋겠다
잘하는 일 하나 없는 계산도 할 줄 모르는 여자
허나, 세상을 보고 세상에 보태는 마음은
누구보다 넉넉한 여자
어디선가 숨어 내 시집 속의 책갈피를 모조리 베끼고
찔레꽃 천지인 봄숲과 미치도록 단풍드는
가을과 내 시를 좋아한다고
내가 모르는 세상 밖에서 떠들고 다니는 여자
그러면서도 부끄러워 자기 시집 하나 보내지 못한 여자
어느 날 이 세상 큰 슬픔이 찾아와 내가 필요하다면
대책없이 떠날 여자, 여자라고 말하며
'여자'란 작품속에만 숨어 있는 여자
이르쿠츠크와 타슈켄트를 그리워하는
정말, 그 거리 모퉁이를 걸어가며 햄버거를 씹는
전신주에 걸린 봄 구름을 멍청히 쳐다보고 서 있는
이런 여자라면 딱 한번 살았으면 좋겠다
팔십리 해안 절벽 변산 진달래가
산벼랑마다 드러눈는 봄날 오후에



<문학과 의식, 여름 1999>









'일상 > 메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머니 2  (0) 2009.04.19
More public than  (0) 2009.04.19
여자의 울음이 긴 이유는  (0) 2009.04.17
눈물은 왜 짠가  (0) 2009.04.17
여자  (0) 2009.04.13
이별노래  (0) 2009.04.13
Posted by Paul Juno

댓글을 달아 주세요